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큰 소동에 빠지게 되고 경배를 한 후에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달라고 헤롯이 부탁하는데 이는 아기 예수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였습니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을 만나지 말 것을 지시받고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헤롯은 베들레헴 근방의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을 학살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살육이 일어나기 전에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하심을 받아 애굽을 피신함으로 아기예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피신한 것은 호세아서 11장 1절의 말씀의 예언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호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세아 예언의 문자적인 의미는 과거 출애굽에 대한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출애굽과 동일한 사건이 미래에 다시 한번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아기 예수로 인해 성취된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피신할 때는 두려움과 절망이었지만 애굽에서 나올 때는 하나님의 구원과 소망이 넘치게 됨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기예수 탄생과 연관된 또 하나의 예언의 말씀은 베들레헴 영아학살입니다. 이는 렘 31:15 말씀의 성취입니다. ■렘 31: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라헬은 이스라엘 백성의 어머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는 야곱의 부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굳이 라헬이 언급되는 것은 자녀에 대한 한이 많은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임신을 하지 못해 고통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고 둘째 아들 베냐민은 베들레헴 길에서 낳다가 산모 라헬이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냐민으로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를 처음 언급한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상황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자녀에 대한 아픔을 가졌던 라헬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예언을 마태가 인용하는 것은 베들레헴 학살이 바벨론 포로의 재현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의 재현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죽어서가 아니라 메시야 제거를 목적으로 어둠의 권세가 행한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침략의 배후에 메시야 제거에 대한 음모가 있었고 베들레헴 학살도 마찬가지로 메시야 제거에 대한 악한 영의 음모가 있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피신해야 하는 요셉의 가정,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학살을 당하는 베들레헴 여인들과 같은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변상황에 매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경험하시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