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해석을 멈추면 당연히 생로병사가 희석되면서 전체 느낌을 얻게 됩니다. 개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우주가 된 홀가분한 기분이 충만합니다.  그런데 그 기분이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건가요?  그런 기분을 백 번 천 번 느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마음의 평화요?  수행은 평화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억눌러 얻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도 아닙니다.  참된 평화는 어떻게 삼라만상이 시작되어 현존하며, 그 가운데 나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합니다.  진리를 모르면서 누리는 평화는 일종의 마취이고 세뇌이고 신앙일 뿐입니다. 인류는 오랜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중생의 고통을 빠르게 없애주는 ‘참나’라는 진통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생이 된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無我’라는 치료제입니다. ‘참나’의 진통제는 고통을 유발하는 ‘생각’을 마취해 깊은 안식을 줍니다.  반면에 ‘無我’의 치료제는 ‘생각’이 통증이 된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 줍니다. 따라서 진통제인 힌두교의 ‘참나’를 불교의 치료제처럼 과대포장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가치는 지대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생각을 마취시켜 오는 ‘참나’의 안식에 만족하시나요?  싯다르타가 인류에게 남긴 ‘無我’의 치료제를 사용해 볼 의향은 없으신가요? #견성#참나#깨달음#불교#수행#마음#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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