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뉴스] 기독교대한감리회, 122년 만에 아펜젤러 순직 어청도에서 기념비 제막 "한 알의 밀알이 된 아펜젤러의 선교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이철 감독회장, 이하 기감)가 1885년 4월 5일 국내 첫 선교사로 조선 땅을 찾아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와 기독인재 양성에 힘쓴 헨리 아펜젤러(1858 - 1902)의 순직 현장을 찾아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아펜젤러 순직 122년 만에 처음으로 순직 현장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 기감 호남연회(김필수 감독)는 지난 2022년 아펜젤러 순직 120주년을 맞아 제막행사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기상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수차례 연기된 바 있다. 아펜절러 선교사는 1902년 6월 11일 한국어 성경번역회의를 위해 목포로 향하던 중 군산 어청도 앞 바다에서 목포에서 올라오던 배와 충돌하는 해상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아펜젤러가 탔던 배의 승객 46명 가운데 18명이 사망했다. 당시 생존자에 따르면 아펜젤러는 한국인 동료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기 위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해 순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펜젤러 순직 기념비 제막식은 3일 오후 전북 군산시 어청도에서 기감 호남연회(김필수 감독) 주관으로 진행됐다. 아펜젤러 순직 기념비 제막식에는 기감 선교국과 호남연회 목회자, 마을 주민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호남연회 김필수 감독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 땅의 민족을 친구 삼고, 이 땅의 민족을 위해 죽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사랑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며, "기념비를 제막하는 것은 이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감독은 이어 "이곳에 오신 분들이 한 알의 밀알로 떨어진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희생과 숭고한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 사랑을 전염시키는 성도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기감 선교국 태동화 총무는 축사에서 "아펜젤러 선교사가 순직한 해인 1902년 12월 22일에는 한국 감리교회가 하와이 사탕수수 한인 노동자들을 위해 첫 선교사를 파송했다"며, "한국교회가 어렵고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이 때에 아펜젤러 선교사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이 제막식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근대 교육과 감리교회 발전에 초석이 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기념비는 전국에 많지만 아펜젤러가 순직한 현장에 기념비를 세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감리교신학대 소요한 교수(역사신학)는 "배의 충돌위치는 어청도 서북쪽 3.7~5.5km 지점이었다"며, "이곳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비를 세운 것은 역사를 제대로 고증했다는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어청도는 바닷물이 푸르고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청도 등대 낙조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꼽힌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간직한 어청도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비가 세워져 많은 교인들이 찾는 성지순례지로도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전한 감신대 유경동 총장은 "학생들이 감리교 발전의 밑거름이 된 아펜젤러의 선교정신을 배우고 도전을 받을 수 있도록 어청도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청도 유일의 교회인 어청도교회(예장 통합) 시무장로인 최종곤 장로는 "어청도교회가 87년전에 세워졌는데 아마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그 이전에 먼저 선교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인근의 다른 섬보다 일찍 복음이 전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래 어청리 이장은 "아펜젤러 순직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마을의 큰 복인 것 같다"며,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우리 어청도를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비는 어청도 팔각정 옆에 세워졌다. 비문에는 44세의 일기로 어청도 앞바다에 영면한 아펜젤러 선교사가 근대 교육발전과 문서선교, 계몽운동, 교회 설립에 힘쓴 행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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