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RROW 10월 18일] ① 1685년 프랑스, 낭트칙령 철회 ② 1959년 러시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매각 ③ 1967년 부츠 열풍 전 세계 강타 ④ 2004년 미국, 뉴욕 지하철 100주년 낭트칙령은 프랑스의 앙리 4세가 신교 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약 3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전쟁 1562-98년)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절대군주인 루이 14세는 낭트칙령을 철회해 위그노의 종교적, 시민적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였다. 이로써 남서 프랑스에 많이 살던 신교도 약 100만이 크게 동요를 일으켜 그중의 약 40만 명이 영국, 네덜란드, 프로이센 등으로 망명하였다. 신교도는 거의가 근면한 상인, 기사, 공예인, 군인 등이었으므로, 이로 인한 프랑스의 손실은 매우 컸다. [5분후세상 ISSUE] 루이 13세(1601-1643) 시대는 위그노와 대귀족의 반항이 거세었던 시기였다. 신교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칙령은 튼튼한 보호막이 아니었다. 1648년부터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대귀족들의 최후의 반항이 된 ‘프롱드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는 왕권이 더욱 강화되면서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그 중심에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1643-1715)가 있었다. 그는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열망으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상업 정책을 단행했다. 그는 또 유럽의 열강을 상대로 플랑드르 전쟁(1667-1668) 네덜란드 전쟁, 아우크스부르크동맹 전쟁(팔츠 계승전쟁), 에스파냐 계승전쟁을 강행하여 유럽의 지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파리 교외에 지은 베르사유궁전은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며, P. 코르네유, J.B. 라신, 몰리에르 등의 거장이 나와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웠다. 중앙집권 체체를 완성한 후 자신을 지상에서의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고 1685년에는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신교도를 박해하였으며, 장세니스트(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고 신의 예정설을 믿는 엄격주의)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공업에 종사하던 신교도들이 국외로 이주함으로써 프랑스 산업은 타격을 받았으며, 잦은 대외 전쟁과 사치스러운 궁중 생활로 재정의 결핍을 초래했다. 이는 루이 15세와 루이 16세로 이어져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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