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코트의서약 #바스티유습격 #국민회의 #루이16세 #제3신분 #민병대 #프랑스대혁명 #장바이 #라파예트 #국민제헌회의 #인권선언 #자코뱅파 #코르들리에파 #입헌군주파 #지롱드파 #마르스광장학살사건 #푀양파 #1791년헌법 #상퀼로트 #발미전투 #단두대 테니스코트의 서약과 바스티유 습격 지난번 언급한 것처럼 1789년 6월 17일, 제3신분은 국민회의를 성립시키고 자체적으로 세수 권한을 비준했는데 국민회의의 성립으로 국왕과 귀족들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6월 20일, 국왕은 제3신분의 회의실을 폐쇄했는데 회의실로 향했던 제3신분의 대표들은 문이 닫힌 것을 알고 분노해 의장 장 바이를 중심으로 테니스코트에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성문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절대 흩어지지 않을 것임을 서약했는데 이 사건을 ‘테니스코트의 서약(Tennis Court Oath)’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불만이 절정에 달하자 혁명의 불꽃은 화산처럼 폭발했는데 맹렬한 화염과 엄청난 진동은 부패한 사회 제도를 깡그리 불태워 버렸습니다. 루이 16세가 사태를 진압하려 했지만 너무 오래 압박을 받아온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고 화를 분출했는데 그들은 무기를 들고 부패한 왕조의 상징인 바스티유로 향했습니다. 22일, 궁정 회의가 개최되고 제3신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국왕은 제3신분 대표들의 결의안을 무효라고 발표했고 제3신분이 복종하지 않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맞대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분노한 제3신분의 대표들은 국왕과 다른 두 신분 대표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회의를 계속 진행했는데 그들은 민주주의와 공정함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제3신분의 의견에 호응한 일부 성직자들과 귀족들도 회의에 참석했으며, 이들은 국왕에게 국민회의가 통과시킨 모든 결정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소리가 점점 강해지자 놀란 왕이 양보해서 그는 27일 특권 신분에게 국민회의에 참여하라고 선포했고 관련 소식은 파리 전체를 들끓게 했는데 국민회의는 제헌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